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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으며_사진에서

바바라 크루거 개인전(2019, APMA Seoul)

by Teknichrome 2019. 10. 19.

바바라 크루거는 엄밀하게 말해서는 사진 작가로 보기 힘드나 가장 유명한 작품들은 사진, 그리고 현대 사회의 시각적 단면을 표현하는 시각적 매체에 기초하기 때문에 시각예술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사진전 이외에는 잘 관심을 안주기도 한다만 작가의 이름값도 이름값이고 해서 비싼 돈을 내고 전시를 봤다.

 

화장품 회사가 갤러리를 낼 생각을 하다니 좀 뚱딴지 같지만 사실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이라는 명제 하에서는 카센터가 갤러리를 내든, 제약사가 갤러리를 내든, 화장품 회사가 갤러리를 내든 크게 이상할 건 없으리라 믿는다. 지금 그렇지 않다면 추후에는 그렇게 되길 바란다. 갤러리는 신축이라 그런지 정말 넓고 깔끔했다. 이 정도 전시 규모면 예당과 세종과도 맞먹...지는 못한다만 웬만한 갤러리보단 그 규모가 훨씬 크다. 건축비가 많이 들었던 모양인지 아니면 클라스가 다르다는 걸 강조하려는 탓인지 입장료는 1.3으로 상당히 강력하다.

 

이 작가를 얘기하며 페미니즘을 빼놓을 수 없다. 바바라 크루거의 대표적인 작품 <Your body is a battleground>는 워싱턴의 낙태 합법화 시위의 선봉에 선 포스터였다. 2019년의 한국 사회, 그리고 한국 예술계에서 페미니즘은 그 위상과 입지가 나날이 커져가고 있으므로 결코 예술하는 사람이라면 가벼이 생각하지 않아야 할 주제이기도하다. 가벼이 생각하는 것은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다'와 같이 일말의 탐구나 이해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라고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페미니즘에 반대할 수 있다. 다만 까더라도 알고 까야지.

 

예술가들에게 언론의 자유를 뺏는 것은 죽여놓고 영혼을 구천에 떠돌도록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리라. 생각한대로 쓰고 상상한대로 그리는 이들 아니던가. 여튼 이 작가를 페미니스트!라며 일말의 눈길조차 주지 않으시려거든 다음의 작품을 보고 한번만 더 생각해보자. 그리고 사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것도 많지만 바바라 크루거는 현대 사회의 허영과 비합리를 전반적으로 다루었다. 페미니즘은 그 일부일 뿐. 

 

당신의 편안은 나의 침묵

그리고 열린 감상의 가능성을 보이는 작품들도 많다. 위 사진도 대표적인 예시인데, 사실 어느 권력관계에서나 기득권층은 피지배층의 고분고분하고 불만 없는 모습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저 작품이 의미하는 바는 생각보다 여러 권력관계에 대입될 수 있다. 인종차별이 될 수도 있고, 페미니즘일 수도 있고, 세대간 갈등일 수도 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미소한 권력분화가 현대사회에서 정말 많이 이루어져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권력은 어디에나 있다!

 

널리 알려졌지만 크루거가 작품을 만드는 방식은 대중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이미지를 가져와 텍스트를 입힘으로써 이루어지는데, 일단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만든다는게 가장 강력한 힘을 주는 점이다. 예술에서 익숙함이 주는 활동 기반은 대단하다. 예를 들면 어떤 대상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때 그 힘을 체감할 수 있다. 숭고를 표현하라고 하면 보통의 사람들은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구도와 후광과 같은 전형적이고 익숙한 이미지를 차용한다. 이러한 익숙한 이미지는 직관적으로 사람들에게 이해가 되기 때문에. 하지만 양날의 검으로 결국 이런 전형적 이미지들은 구차하다는 소리와 함께 묻혀버리곤 한다. 따라서 예술가의 소명은 새로운 이미지로 자신의 메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바바라 크루거의 경우는 익숙한 이미지를 데려와 활동 기반으로 다진 다음, 텍스트를 삽입함으로서 메세지를 전달한다. 때때로 이러한 이미지들은 텍스트와 연관성이 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텍스트가 시각매체의 보조적 수단에서 벗어나, 작품의 핵심적 의미와 메세지를 표시하는 수단으로서, 그리고 오히려 이미지보다 더 큰 존재로서 발전한 크루거의 방식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사용자의 감상을 이미지의 큰 울타리로 묶은 다음, 작가가 원하는 텍스트를 통해 정확하게 찝는 것처럼. 양방향의 감상이 가능하리라.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또는 이미지에서 텍스트로. 사용자마다 다른 감상을 가능케할 수도.

 

왜 바바라 크루거가 큰 존재로 인식되는지 알 수 있는 전시였다. 하지만 규모에 비해서는 너무 비쌌다.

APMA, 니들이 그렇게 잘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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